금강경해설​
벼랑 끝에 선 고려 태조 왕건을 살린 은신처, 비슬산 은적사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第三十二

관리자 | 2006.04.26 07:58 | 조회 2640
                         《응화비진분 應化非眞分 第 三十二》                                                                    응화신은 진신이 아님          1. 주요내용 색신(色身)의 형상으로 감응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응신(應身), 화신(化身)은 참다운 여래의 법신(法身)이 아니다. 상을 떠나야 제대로 참 여래를 보는 것이다.   재물이란 아무리 많다하여도 한계가 있는 유위이며, 이에 반해 진리는 한 마디라 해도 다함이 없는 무위이다. 즉 무위의 진리를 가리킬 수 있는 것은 한 마디의 사구게이며 이 사구게를 설하는 것은 화신이신 부처님이시다. 이러한 이치를 체달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러한 진리를 다른 이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고 행동에 옮길 것임을 당부하신 부분이다. 이 마지막 삼십이분은 『금강경』결론에 해당되는데 금강경을 널리 알렸으면 하는 마음에서 유통분(流通分)이라고 한다. 직접 『금강경』을 널리 유통시키라는 표현은 없지만 이 세상의 가장 값진 재물로 하는 보시 보다도 금강경의 공덕이 아니 사구게만의 공덕이라도 훨씬 더 수승하다고 하면 이 금강경이 널리 유통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본래로 성불되어 있는 존재이고, 우리 내부에는 온갖 만행 만덕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지혜의 등불로 우리의 자성을 밝혀 무궁무진한 우리의 보물을 캐내어 쓰기만 하면 된다는 반야사상을 널리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시켜야 하므로 이처럼 강력한 비유를 들어 금강경의 칭송을 거듭해서 한 것이다.            2. 경의 원문과 해석 [원문] 수보리야 약유인이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로 지용보시어든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紙世界七寶    持用布施                 약유선남자선여인이 발보살심자가 지어차경하야 내지사구게 등을 若有善男子善女人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 等        수지독송하야 위인연설하면 기복이 승피하리니 受持讀誦       爲人演說       基福    勝彼   [해석]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한량 없는 아승지 세계에 가득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할지라도 만약 또 어떤 선남자 선여인으로서 보살심을 발한 자가 이 경전을 가지되 내지 사구게 등이라도 수지하고 독송하여 남을 위해 연설하면 그 복덕이 저보다 수승하리라. [원문] 운하위인연설고 불취어상하야 여여부동이니 하이고오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일체유위법이  여몽환포영하며 여로역여전하니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이니라       應作如是觀 [해석] 어떻게 남을 위해 연설하는가. 상을 취하지 않고 여여히 동하지 않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의 함이 있는 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원문] 불이 설시경이하시니 장로수보리와 급제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와  佛    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比丘尼    優婆塞優婆夷       일체세간천인아수라가 문불소설하사옵고 개대환희하야 신수봉행하니라    一切世間天人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해석]   부처님께서 이 경을 설하여 마치시니,   장로 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모두 다 크게 환희하며   믿고 받아지니며 받들어 행하느니라.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 모든 것의 허망한 이치를 알아서 마음자세를 가다듬고,      흔들리거나 어지러운 마음을 항복받으라는 뜻. ※불법에 마음을 내신 분들은 언제나『금강경』을 수지독송하십시오.    또 남을 위하여 끊임없이 해설해 주십시오.    경 전체가 힘들면 사구게만이라도 남을 위해 설해주십시오.    그 복덕은 참으로 불가사의(不可思議)하여    어떠한 말로도 나타낼 수가 없고,    어떠한 큰 보시보다도 천 배 만 배 더 수승합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고    남을 위해 해설해 주는 진실한 공덕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다 너다, 옳다 그르다,   선이다 악이다, 남자다 여자다,     승(僧)이고 속(俗)이다,   중생이다 부처다,   성인이고 범부다 하는 갖가지 마음을   떠나 보내면 본래 면목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차별상 너머에 있는 평등하고   동일한 참모습으로 여여부동(如如不動)하는   것이야말로 반야(般若)의 삶이고,   보살(菩薩)의 길이며,   여래(如來)의 진리인 것입니다.  
[알림] 본 자료는 대전 계족산 용화사에서 제공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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