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밀경』, 『유가사지론』, 『성유식론』 등의 경론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유식종, 법상종이 주장하는 연기설로 제8식인 아뢰야식을 두어 연기를 설명한 이론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자기가 지은 업의 세력에 의해서 삼계가 생사윤회 한다는 업감연기설(業減緣起說)을 주장하였는데, 과연 그 업의 영향이 결과를 초래할 때까지는 대체 어디에 보존되었다가 차례로 나타나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이에 업의 영향을 저축하여 윤회를 반복케 하는 윤회의 주체를 상정하게 되었다. 이처럼 윤회의 주체를 추구해 간 정점에서 발견된 것이 아뢰야식이다. 본래 아뢰야라는 말은 ‘물건을 넣는 창고’ 내지 ‘곳간’을 의미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숨는 것[能藏], 받아들이는 것[所藏], 집착하는 것[執藏]의 의미가 있다. 즉 선악의 행위에 의한 업력을 받아들여 보존하는 의미가 있으며, 수행에 의하여 아집이 없어지면 그 명칭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아뢰야식은 모든 업의 종자를 보존하면서 선악 업력을 다른 식에 공급하여 발동케 하며 모든 선악의 행동을 나타나게 하는 기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윤회의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도 과거세의 업력을 보존한 이 식이 최초로 태어난 것이며, 내생으로 떠날 때도 금생의 업력을 보존하고 있다가 육체로부터 최후에 떠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은 다른 식에 비하여 그 체성이 단절되지 않고 과보를 받는다는 점에서 과보식(果報識)이라 하고, 또 전생과 금생 그리고 내생의 삼세에 윤회하면서 다른 과보를 받게 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숙식(異塾識)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아뢰야식에 보존된 업력 가운데 별업(別業)은 자신만이 수용하고, 공업(共業 : 공동으로 선악의 행위를 하고 공동으로 과보를 받는 업)은 다른 이와 함께 수용하면서 중생의 현실을 전개함으로 이를 아뢰야연기라고 하는 것이다.